엘림외국인선교회

 

 

HOME목사님E-mail

KoreaEnglish

 

 

 

  

 
 

 

 

인  사  말

 

 

엘림마을 소개

 

 

찾아오는 길

 

 

이달의 일정

 

 

성경이어쓰기

 

 

색상표 및 태그

 

 

 

 

 

 

 

 



 그때가 생각났다(14)
작성자: ellimvillage   등록일: 2018-02-05 08:08:55   조회: 14  



그때가 생각났다(14)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올들어 가장 추운 주일이었다.
이렇게 추운 주일 아침에 과연 몇 명이나 예배에 참석할까 싶었다.
예배당은 난로를 피어 훈훈하게 만들어 놨다.
점심으로 우리는 맛있는 요리를 해 왔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도 따끈따끈한 빵처럼 잘 준비돼 있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포하는 메시지였다.
신명기 4장 9-10절에 'As long as we live"라는 문구가 두번 기록돼 있다.

우리는 주일 오전 11시부터 복음 찬양을 함께 부르기 시작하여 30분까지 부른다.
11시 30분이 되면 예배를 시작하여 12시 30분에 예배가 끝난다.
12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한시간 동안 오찬과 교제의 시간을 갖는다.
13시 30분 이후 부터는 2부 순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늘 주일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일이 일어났다.
모든 지체들이 11시 찬양 시간에 전부가 출석했다.
정말 이런 강추위에 일찌기 출석해서 나는 기분이 좋았고 고무되었다.
여느 주일보다 더 늦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멀리 동탄에서, 천안에서, 평택에서 그리고 안성 시내에서 출석했던 지체들이다.
아내와 나는 매 주일마다 정성을 다 해 점심을 준비한다.
상전 모시듯, 임금님 밥상을 차리듯이 우리는 정성을 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오늘따라 지체들이 어찌나 식사를 잘 하는지 밥은 물론 그렇게 많은 반찬도 동이났다.

이렇게 지체들이 일찍 출석해줘서 그런지 나도 마음이 뜨거워져 힘차게 말씀을 전했다.
어려움을 당했던 지체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일이 잘 풀려서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해주고 붙들어주면서 친밀한 사귐을 갖는게 예배가 아닐까 싶다.
상담 시간을 통해 전도의 필요성, 안정된 일자리,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말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나도 그렇게 선포했다.
이는 우리가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형통하는 삶을 가능케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삶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만 아이들이 거의 70명이었다.
네개 마을에 국민한교가 하나였고 각 학년별로 교실이 하나였다.
따라서 6학년까지 교실이 여섯개였다.
지금은 작년에 방문해보니 시설이 축소되어 교실이 두개만 남아 있었다.

우리반 아이들 중 나만 유일하게 혼자 주일학교에 다녔다.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교회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형들과 누나들 틈새에서 함께 교회 생활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내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고단하고 힘든 군대 생활이었지만 주일성수만큼은 양보나 타협없이 잘 지켰다.
군종이 된 이후에는 수요일 저녁 예배를 부대 밖에 있는 민간인 교회에서 드렸다.
수요일 저녁에는 목사님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등학생이었던 목사님 따님이 나를 많이 좋아해서 그런지 사모님도 친절했다.

그때 우리 부대에는 교회(예배당)가 없어서 주일에는 식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식사 후에 군종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11시까지 예배 준비를 마쳤다.
유인갑, 유구오, 박찬오 군종들이 쓸고 닦으면서 청소한 후 예배를 준비했다.
유구오 군종은 풍금 반주를 담당했고 나는 매주일마다 말씀을 선포했다.

어느 주일에 예고도 없이 포병사령관이 많은 장교들을 대동하고 예배에 츨석했다.
20 명이 넘는 장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예배 후에 사령관은 내 앞으로 나오더니 90도로 고개숙여 깎듯이 내게 인사를 했다.
일개 상병이었던 군종에게 우리 부대 최고 사령관이 내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그때까지 우리 부대 교회에는 교회 이름도 교패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주목으로 만든 교회 명패를 만들어 와 친히 식당 문 앞에 달았다.
김찬진 집사님 사령관은 '성령 교회'라는 교패를 직접 걸어주셨다.
이듬해인 내가 병장이었을 때 10.26 사태가 있었고 이어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있었다.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는 전방 부대에 비상이 걸려서 나도 보름 이상을 산 속에 있었다.
그때 두 주간 동안은 주일에 산과 계곡에서 전우들과 함께 산상 예배를 드렸다.
그때 우리 21사단은 물론 가까운 인재 홍천 지역 부대까지 간첩작전에 투입되었다.
아침 일찍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철모에 받아 종일토록 식수로 사용했다.

그때 두 주간을 제외하고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일을 거르는 일은 없었다.
주일 예배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경외한다는 나의 신앙 고백인 것이다.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서 무엇으로 어떻게 신앙 고백을 표현할 수 있을까?
예배 중심, 예수님 중심 그리고 말씀과 기도 중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가!
그때가 생각났다(13)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Copyright ⓒ 2006 엘림외국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