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외국인선교회

 

 

HOME목사님E-mail

KoreaEnglish

 

 

 

  

 
 

 

 

인  사  말

 

 

엘림마을 소개

 

 

찾아오는 길

 

 

이달의 일정

 

 

성경이어쓰기

 

 

색상표 및 태그

 

 

 

 

 

 

 

 



 세상에 우연한 일은 없다
작성자: ellimvillage   등록일: 2017-12-02 05:41:51   조회: 240  



세상에 우연한 일은 없다

세상에 우연한 일이 있다면 지구는 헛돌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이 생긴다.
이럴 겨우 사람들은 보통 운명이려니, 팔자려니 혹은 우연한 일이겠거니라고 치부해버린다.
어떤 경우에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걸까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나도 어릴적에 무던히도 가난에 쪼들려서 왜 나는 하필 이런 집안에 태어났을까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팔자가 이런 것이면 더 살아본들 무엇하랴 싶어 자살을 생각해본적도 있었다.
주변에 팔자 타령을 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들을 많이 있다.
심지어 교인들 중에도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을 때 신앙을 저버리고 타락하는 이들도 있다.

종종 병문안을 가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찾아왔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다.
내 지인 중에도 평소에 식사나 건강 관리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몹쓸 병에 걸리기도 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에서조차 이해불가한 일들이 많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뿐 창조자 하나님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가령 폭우가 쏟아지는 날 숲속을 행진하는 개미떼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왜 하필 오늘 폭우가 쏟아지는걸까?
아니면 오늘만큼이라도 폭우가 쏟아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왜 우리는 오늘 길고 긴 행군을 하는건가?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혼을 가진 개미들의 생각이나 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에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욥기를 읽을 때마다 그가 고초를 겪는 동안 참으로 하늘과 땅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음을 느낀다.
사람들이 감옥에도 가고 중병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욥처럼 장 시간 다양한 고통을 당하기는 쉽지 않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나듯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체득한다.

발생하는 제반 일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걸까?
물체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듯이 색각과 경험이 같이 있어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과 이론과 관념과 지식은 많은 데 체험은 빈약하다.
따라서 어떤 일을 말할 때 자신의 지식에 비추어서 말하고나 판단하게 된다.

바울이 지적했듯이 어릴 때엔ㄴ 생각하고 깨닫고 말하는 것이 유치할 수 밖에 없다.
장성할수록 생선 먹을 때 가시까지 와작 씹어먹을 수 있게 되듯이 영적인 세계 또한 그러하다.
성경을 이해하는 방면이나 수준도 역시 나의 영적인 성장과 같은 위치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성경 말씀 어디를 읽거나 묵상해도 내 것으로 이해되고 믿어진다.

평소에 기도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으로 위급한 경우에 기도할 때 합당한 이유와 자격이 필요하다.
가령 길을 걸어가는 거지가 아무에게나 손을 볼리면 과연 몇 사람이나 관심을 가질 것인가.
하지만 내가 어려울 때 나와 친밀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하소연하면 그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게 영적인 일이든 육적인 일이든-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겠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반응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돌이켰다는 점이다.
내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도 나를 향해 관심을 기울이시게 된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합당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내가 지금까지 행했던 선한 일들을 기억해달라고 고백하며 기도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땅에서 매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환언하면 내가 이 땅에서 행한 일들이 기도할 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내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었으니 하나님도 이번에 제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간청했던 것이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앞에 간청할 때 제대로 된 합당하고 신앙적인 기도를 할 수 있었음은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 염치없이 혹은 무턱대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평소에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즐겨 선을 행하는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 합당하게 간청할 수 있게 된다.
가련하게도 아사 왕은 그의 발목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명의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병들었을 때 히스기야 왕처럼 주저함없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
나는 5분 대기조다
병들었을 때는 기도할 때다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Copyright ⓒ 2006 엘림외국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